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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 소개

유적유품 및 종가문서 소개

이 문서는 영남사림파의 종장(宗匠)인 김종직(1431~1492) 가문의 전적 및 수택유품(手澤遺品)이다. 그는 1461년 (세조 7)에 등제(登第) 한 이래 내외의 고관을 역임하였다.

김종직은 등제 후 일찍부터 문재(文才)를 인정받아 한관(閑官)에 제수(除授)되어 독서하였고, 이어 1462년에는 예문봉교(藝文奉敎)를 겸대(兼帶)하게 되었다.

성종조에는 경외(京外)의 요직을 지냈으며, 1484년(성종 15)에는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이후 예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또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찬(撰)하기도 하였다. 그는 고려말 정몽주·길재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로부터 수학하면서 조선시대 도학의 정맥을 계승하였으며, 그의 도학

사상은 이후 김광필, 정여창 등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조선 성리학의 적통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연산조의 무오사화때 삭탈관직과 부관참시를 당하는 등 수난을 입기도 하였

지만 그 뒤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으며 밀양의 예림서원, 선산에 금오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그 내용은 김종직의 수필(手筆) 당후일기(堂後日記)와 교지(敎旨)·첩지(牒旨) 및 김종직의 모부인(母夫人)의 서찰, 김종직의 후부인(後夫人) 문씨의 분재문기(分財文記)와 호구단자

(戶口單子), 전답매매명문 등 성종조부터 19세기까지의 세대별 고문서 114점 및 상아홀(象牙笏), 성종하사(成宗下賜) 의 필옹옥우(畢翁玉友(玉현))·유리주병(琉璃酒甁), 매화(梅花)현

등 김종직 수택유품이다.

김종직의 "당후일기"

1482년 11월 1일에서 12월 25일 사이의 김종직의 승정원일기인 당후일기는 전후가 탈락되었고, 유품은 원형대로, 고문서는 훼손이 가한 것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들 전적과 유품은

김종직이 참혹은 무오사화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존되고 있다는 데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료로서도 가치도 매우 높다.

고문서

특히 고문서는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그 내용을 보면 교지는 모두 김종직과 그 자손들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는 김종직을 영의정으로, 그리고 그의 전후처

(前後妻)인 조씨(曺氏)와 문씨(文氏)를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증하는 교지 및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는 교지가 있다. 호구단자와 분재기는 그 시기 사회·경제적 기반을 파악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데, 이중에는 김종직이 처부모부터 허여(許與) 또는 별급(別給)받은 문기와 그의 후처 문씨의 허여문기(許與文記)가 있다.

문씨의 "허여문기"

특히 문씨의 허여문기는 무오사화후의 사정을 잘 보여준다. 본 문화재중 분재기의 상당수는 처가로부터 분급받은 것으로 당시의 재산수수관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소지(所志) 및 입안(立案)의 상당수는 필재사우(畢齎嗣宇)에 대한 각종 역(役)을 면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과 여기에 대한 관의 처분이다.

이들 문건은 대부분 18세기 후반이래 작성한 것인데 입안 3건 중 2건은 노비소송에 관한 것이며, 1건은 양자에 관한 예조입안이다.

당후일기(堂後日記)

이조 성종시 당시 형조판서이던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당시 조정의 조회(朝會)시 요즘의 국모회의격인 어전회의 기록 중 일기 형식으로 적은 시기의 일종으로 46매 92 페이지로

되어 있다.

> 소유 : 김진규 / 소재 :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크기 : 가로34cm, 세로39cm / 시대 : 이조 성종

> 작자 : 김종직

옥벼루

영남학파의 영수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형조판서 재직 시 성종대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다. 필용옥우(畢翁玉友)라는 4글짜가 음각 되어 있으며 벼루 주위에 조각은 없이

단조로우나 하얀 백옥으로 만들어 졌으며 그의 생시에 애용하던 매화 벼루는 까만 오석에 매화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 소유 : 김진규 / 소재 :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크기 : 가로13cm, 세로25.5cm, 높이 2cm / 시대 : 이조 성종

> 재료 : 옥(玉)

대락흥천지동화부(大樂興天地同和賦)

조선조 철종시 문과 대과에 장원급제한 김준의 답안지로서 답안지 맨 끝부분에 본인이 수경을 한 다음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어 당시에도 시험의 공정을 기하기 위한 흔적이

보인다.

> 소유 : 김진규 / 소재 :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 크기 : 가로76cm, 세로131cm / 시대 : 이조 철종

> 재료 : 한지 / 작자 : 김준(金埈)